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Title : 한국의 미 - 장승
Name : 관리자   Date : 2008.01.27 19:44   Read : 1,734
예로부터 장승은 그 험한 표정안에 해학과 속정깊은 친근함을 담고서 부락과 사람을 수호하고 방위를 지키는 든든한 우리의 신이요, 문지기요, 믿음이었다. 

그 옛날 장돌뱅이 봇짐장수이든 팔도를 유람한 방랑시인이든 삼천리방방곡곡을 찾아다닌 나그네라면 곤한 여정을 잠시 멈추고 갈길을 가늠했을 곳, 바로 고을마다 그 입구에 서있던 장승의 전면이다. 



<장승의 유래>

장승들에게는 밑등치에는 이정표가 적혀있는데, 그 거리를 보고 나그네들은 앞길을 계산하고 쉬었을 것이다. 
이정표 역할의 유래는 조선시대 부터일 것이다. 

허나, 이미 신라 소지왕때 (487년)에 옛길을 넓혀 관도를 사방으로 닦고, 우역(郵驛)을 두어서 사람과 문서와 물품을 보낼 수 있게 하였는데, 조선조에 이르러서는 <경국대전(經國大典)>에 의하여, 관로(管路)나 군로(軍路) 10리마다 역참(驛站) 사이의 정확한 이정을 표시하기 위하여 후(흙무더기)를 두고 노표 기둥을 세웠다. 

그런데 이 노표에는 법수의 얼굴을 무섭게 새겨서 노신(路神)을 만들어 넣었고, 관로(國道) 를 따라 여러마을로 찾아오는 중국의 역귀(疫鬼)를 노신이 쫓아 보내게 하였다고 한다. 

이 노표를 장생이라 하였는데, 음(音)이 바뀌어 「장승」 또는「장생」이라 불리게 된 것이다. 

이처럼 장승은 무서운 표정으로 마을에 들어오는 잡귀와 흉을 물리치면서 한편 길을 찾는 사람들에게 언제나 반가운 길잡이요 동무였던 우리고을의 문지기였던 것이다. 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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